암 정복, 이만큼 왔다…희망의 빛 비추는 연구들


현대인에게 가장 무서운 질병인 암을 정복하기 위해 그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이 연구를 거듭해왔지만 암은 좀처럼 비밀의 문을 열지 않았다. 많은 과학자들이 낙담하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암 치료 과정에서 고통을 조금이나마 더 줄이고 항암 치료 효과도 높이기 위한 새로운 치료법 개발이 속속 진행되고 있다. 광역학적 암 치료· 화학약물에 대한 암세포의 내성 등 기존 치료법의 문제점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치료법을 찾아나서면서 성과를 내고 있다. 물론 이들 연구는 임상을 거쳐 실제 치료로 상용화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조금씩 묵묵히 나아가는 이들 연구로 인해 암 정복의 길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 암세포 표적률을 높여라

현재 대부분의 암 환자는 방사선 요법이나 화학 요법 또는 외과적 수술을 통해 치료받고 있지만 부작용이 만만찮다. 따라서 최근 수술을 하지 않고 비침습적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한 종양 치료 신기술로 광역학적 암 치료가 주목받고 있다. 광역학적 암 치료는 인체에 무해한 근적외선 영역의 빛을 이용한 암 치료법이다. 환자에게 광역학 치료제를 투여한 후 근적외선을 쬐어 활성산소를 유발시켜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광역학 치료제는 단점이 있다. 암세포만 표적 치료하는 선택성이 낮아 정상 세포에 손상을 유발하거나 재발 가능성이 크다. 1세대 광역학 치료제의 경우 근적외선 분자흡광계수(빛을 흡수하는 정도)가 낮아 활성산소종(산소 분자가 대사 과정에서 불완전 환원되면 생기는 중간산물로 독성을 나타냄)을 배출하기 어렵고 종양 조직이 아닌 정상 조직에도 축적될 수 있다. 근적외선 분자흡광계수를 높인 2세대 광역학 치료제도 있지만 여전히 종양 선택성이 떨어진다.

최근 김종승·김종훈 고려대 교수와 이진용 성균관대 교수, 조너선 세슬러 미국 텍사스대 교수 공동연구팀은 종양을 표적해 암 조직이 새로운 혈관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광역학 치료제를 개발해 눈길을 끈다. 정상 세포는 규칙적으로 정돈된 혈관을 따라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받지만 종양 세포는 빠르게 성장하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얻고자 많은 양의 혈액을 흡수하려고 스스로 주변에 혈관을 만든다. 연구팀은 암세포가 더 증식할 수 없도록 혈관 형성을 억제하는 데 주력했다. 이러면 정상 부위에는 손상을 입히지 않고 종양 부위에만 선택적으로 치료제를 전달해 활성화시킬 수 있다. 연구팀은 이뇨제나 안압강하제 등으로 자주 쓰이는 '아세타졸아미드'라는 물질이 혈관 억제 생성 기능이 있음을 최초로 밝혔다. 이 물질이 암세포에 과도하게 발현되는 '탄산탈수소효소9' 단백질과 강력하게 상호 결합한다는 특성을 이용해 암세포 표적화를 유도했다. 이렇게 개발한 광역학 치료제를 사람의 유방암세포를 이용한 동물 모델에 투여한 결과 아세타졸아미드가 없는 기존 광역학 치료제에 비해 4배 이상 종양 부피가 줄어드는 사실이 확인됐다.

무엇보다 연구팀이 개발한 광역학 치료제를 투입한 결과 암 신생 혈관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단백질인 '혈관내피성장인자A'와 '혈관신생단백질2'가 현저하게 줄어든 것이 확인됐다. 김종승 교수는 "현재까지 초기 임상단계 수준의 연구를 수행했고 약물의 체내 동태나 인체 안전성 평가 등 후속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기존 광역학 치료제 가운데 종양지향성 부족 등 문제로 개발 단계에서 퇴출당한 치료제를 이번 신치료제 플랫폼과 결합하면 신약 개발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과 자본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암세포 에너지원을 차단하라

암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미토콘드리아를 망가뜨려 암세포를 자살시키는 방식의 새로운 항암 치료법도 주목받고 있다.

유자형·곽상규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와 이은지 충남대 교수 공동연구팀은 암세포 미토콘드리아 안에서 합성 펩타이드(아미노산 결합체) 자기조립 방식을 통해 암세포를 제거하는 방안을 개발했다.

수술로 암을 제거한 뒤 화학약물을 계속 투여하다 보면 내성이 생길 수 있다. 암세포에 내성이 생기면 더 이상 화학약물로 암을 억제하기는 어렵다. 연구팀은 그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분자의 자기조립을 이용해 암세포를 제거할 수 있도록 했다.

암세포 내부에서 스스로 뭉친 분자들이 암세포를 파괴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자기조립은 자연계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중요한 현상 중 하나다. 인지질이 모여 만드는 세포벽이나 긴 펩타이드 사슬이 모여 만드는 단백질 나노구조, DNA 이중사슬 등이 모두 자기조립 현상으로 탄생한다.

연구팀은 여러 세포 소기관 가운데 미토콘드리아를 표적으로 삼고 이를 파괴시킬 자기조립 물질을 합성했다. 세포 내 에너지 공장으로 알려진 미토콘드리아가 망가지면 암세포도 죽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연구진이 합성한 물질은 '트리페닐포스포늄'을 연결한 펩타이드다. 이 펩타이드는 세포 밖에서 자기조립하지 못하고 분자로 존재한다. 하지만 이 분자가 미토콘드리아 안으로 들어가 쌓이면 그 농도가 수천 배 높아지게 된다. 이때 분자들끼리 끌어당기는 힘이 생기면서 자기조립해 나노섬유 구조를 만들게 된다.

분자 하나가 암세포의 미토콘드리아에 끼치는 영향력은 작다. 하지만 분자 수백~수천 개가 모여 만든 나노섬유 구조의 영향력은 매우 커서 미토콘드리아 막에 구멍을 뚫게 된다. 이러면 미토콘드리아 안에 있던 단백질들이 세포질로 나오면서 암세포가 사멸하게 된다.

유자형 교수는 "이번에 개발한 방법은 화학약물 치료와는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으로 암세포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약물 내성을 이겨낼 수 있다"며 "난치성 암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종양에 인공수용체 전달

종양 표적 치료는 종양 내 표적 분자가 있는 환자에게만 효과가 있고 표적 분자가 소량으로 존재하거나 불균질하게 존재할 경우 치료 효과가 약하다.

최근 박지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바이오·뇌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종양 전체에 인공수용체를 전달해 효과적으로 종양을 표적 치료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리포솜이라는 인공 나노입자와 세포에서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엑소솜이라는 생체 나노입자를 동시에 이용했다.

먼저 세포막과 효율적으로 결합하는 인공 나노입자인 세포막결합성 리포솜을 만들었다. 리포솜은 특정 분자를 표적하는 것이 가능한 인공수용체를 싣고 혈류를 통해 종양으로 침투한다. 이때 종양세포가 분비하는 엑소솜에 인공수용체를 탑재시키는 것이 리포솜 역할이다. 세포막결합성 리포솜은 정상 세포보다 암세포에 더 효과적으로 인공수용체를 전달함으로써 종양 표적치료를 용이하게 한다. 박 교수는 "표적 치료가 어려운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 전이 암세포 생존 메커니즘은?

암세포 치료와는 별개로 암세포가 어떻게 생존하고 대사 경로를 바꾸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 최근 육종인 연세대 교수와 황금숙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박사 연구팀이 이를 규명하고 나섰다.

연구팀은 암세포가 주변 조직을 공격해 뻗어나가고(침윤), 처음 발생한 장기로부터 혈관과 림프관을 타고 다른 조직으로 퍼져나가는 현상(전이)은 암세포 스스로 특정 단백질을 이용해 대사를 조절함으로써 이뤄진다는 걸 처음 밝혀냈다. 암세포가 이용하는 특정 단백질은 '스네일'이다. 이는 세포골격 변화와 운동성을 얻는 일에 관여한다.

전이 과정의 암세포에서는 스네일이 대사물질을 억제해 암세포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환원력을 얻는다. 전이 암세포가 대사 조절의 핵심 물질로 사용한 건 'PFKP'로 밝혀졌다. 암 유전자인 스네일은 폐 전이를 증가시키고 여기에 PKFP를 증가시키면 다시 폐 전이가 억제되는 게 동물실험 결과 나타났다.

육종인 교수는 "그간 전무했던 암세포 전이 과정의 대사 조절에 대한 최초의 연구 성과"라며 "새로운 대사 치료 표적을 제공함으로써 기존의 대사약제를 암 치료에 적용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고 전했다.

■ 면역력 훈련시켜 암 공격…자연에서 항암물질 얻기도


면역력을 키워 암세포를 죽이는 면역항암 치료도 암 치료의 새로운 분야로 각광 받고 있다. 체내 면역세포인 T세포나 자연살해(NK)세포 등의 용어가 최근 일반인들에게도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 면역세포의 기능에도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들의 힘을 복원하고 키워주는 후속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강창율 서울대 약대 교수팀은 최근 '인터루킨21'이라는 특정 단백질이 전이암이나 말기암 환자에게서 감소 또는 소실된 체내 면역세포 기능을 회복시켜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암세포 표면에는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제거할 수 있도록 돕는 '주조직성 복합체Ⅰ'이 있다. 이 복합체는 체외에서 들어온 항원과 결합해 T세포 등에 항원을 제시하고 체내 면역반응을 일으키도록 하는 분자다.

하지만 전이암이나 말기암 환자의 경우 주조직성 복합체Ⅰ이 소실되거나 줄어들어 있어 체내 면역세포인 T세포가 암세포를 제거할 수 없게 된다. 동시에 다른 면역세포인 NK세포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해 환자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다. 연구팀은 주조직성 복합체Ⅰ을 소실한 암세포가 NK세포에 의해 초기에 제거되지만 장기적으로는 NK세포의 기능 소실을 유도해 암이 전이된다는 걸 밝혀냈다. 이때 인터루킨21이라는 단백질 복합체(사이토카인·면역체계 제어 물질)가 NK세포의 기능을 회복시켜 암세포를 제거할 수 있다는 게 처음 밝혀졌다.

연구진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암세포 표면의 주직성 복합체Ⅰ을 제거한 세포를 만들어 생쥐에 이식한 후 면역회피 현상이 일어나는 전이·말기암 모델을 만들었다. 이후 NK세포를 자극해 분비하는 여러 사이토카인 중 인터루킨21에 주목해 이 기능을 확인한 것이다.

강 교수는 "인터루킨21이 말기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건 생쥐 실험에서 뿐 아니라 암 환자의 암 조직에서 얻은 기능 저하 NK세포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증명됐다"며 "이를 활용한 다양한 종류의 면역항암 치료제 개발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자연에서 얻은 암 치료 면역보조제 개발도 속속 진행되고 있다. 이창환 울산대 교수와 진준오 중국 푸단대 교수 공동연구팀은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죽일 수 있는 면역보조제 물질을 한약재 식물 중 하나인 '지황'에서 최근 발견해 냈다. 현재 암 치료를 위한 면역보조제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서 추출하기 때문에 생체 안전성 측면에서 다소 문제가 있다. 하지만 연구팀이 발견한 지황 추출 다당류는 동물실험 결과 면역 활성을 통해 피부암과 대장암의 성장을 억제하고 말초 조직의 염증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쥐 골수에서 뽑아낸 수지상 세포를 활용해 지황 추출 다당류가 수지상 세포의 활성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이를 통해 T세포 활성화가 일어나고 이 T세포가 항원을 발현하는 암세포를 찾아 죽이는 과정까지 관찰했다. 천연 추출 물질을 이용해 면역 활성 물질을 만들어낸 만큼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통한 면역활성제보다 안전성이 높아 사람에게 적용 가능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창환 교수는 "지황 추출 다당류의 면역 활성은 비단 암 치료뿐 아니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나 포도상구균 감염 같은 일반 감염질환 치료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진우 기자]


정보출처 : http://v.media.daum.net/v/20170714154405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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