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살아갈까?

태어나는 것은 나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태어나게된다. 태어나면서 모든것은 처음 격는 일이지만 부모님의 보살핌과 관심, 사랑을 먹고 자라게 되지만 이렇게 누리며 받으며 자라나지 못하는 아이들도 부지기수이다.

대한민국은 짧은 시기에 크게 번영하여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된 나라이지만 우리의 어려워던 시절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초이스태교연구원장 김재만(68) 목사는 성경적 태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김재만 목사는 '성경적 태교' 지도자 과정을 통해 "태아도 성령 충만을 받는다"며 하나님이 생명을 창조하시는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특히 존귀한 생명을 태아 때부터 거룩한 사람으로 키우는 방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 하곤 한다.

김재만 목사의 주장을 일리 있다고 생각하기에 기회가 되는 대로 성경적 태교의 관하여 소개를 하곤한다.

하루의 일과는 잠에서 깨어 기상하고 사람마다의 상황에따라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 잠을 통해 하루의 일과를 마치게된다.

주어진 이 하루를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겠지만 어떤 생각으로 어떤 기준으로 살아갈까 가끔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고 한다.

하루가 주어졌으니 살아 가는 것일까? 아니면 하루가 생겼으니 살아 가는 것일까 질문의 형태의 따라 답변도 달라질 것이다.

나는 여기서 감사라는 단어로 접근하고 싶다.

얼마나 감사하며 살고 있으신지요?

일인미디어포럼 소셜마케팅 협업아카데미와 관련하여 보면 지도교수님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강의로 나누어 주시고 껌딱지부부 모임으로 가정의 행복을 세워가시고 계시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하인선작가님과 각 센터장님들 그 외 스텝으로 봉사자로 섬기는 분들을 뵈면 고맙고 감사함이 앞서곤 하는데 그래서인지 일인미디어포럼 소셜마케팅 협업아카데미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재활병원에서 근무하는 전도사님의 글입니다.

저는 여러가지의 장애를 입은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손이 절단된 한 환자가 말했습니다. “병원에서 청소하는 분들이 정말 부러워요. 만약 제게도 손이 있어서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유방암이 팔까지 전이되어 한 팔을 잃은 환자가 말했습니다.  “팔을 다시 가질 수 있다면 세탁기로 빨래를 하지 않을 거예요. 손으로 빨래할 때 느껴지는 촉감을 실컷 느껴보고 싶어요.”

양쪽 팔에 무거운 의수를 단 환자가 말했습니다.  “저는 아내가 밥을 떠먹여줘야 먹을 수 있고, 화장실에 가서도 바지를 내리고 뒤처리까지 다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아내를 안아줄 수 없는 몸이 되었어요. 두 팔이 있었을 때 자주 안아주지 못한 게 후회돼요.”

인도를 걷고 있다가 택시가 갑자기 덮치는 바람에 한쪽 다리를 절단한 한 여대생이 아침에 회진을 하는데 울며 말했습니다. “어젯밤 꿈에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걸어 다녔는데, 일어나보니 제 한쪽 다리가 없어진 그대로였어요. 마음이 너무 아파요. 꿈에서처럼 친구들과 걸어 다니고 싶어요.” 

하반신이 마비된 환자들은 변의(便意)를 느끼지 못합니다. 소변이나 대변이 마렵다는 느낌이 없기에 시간에 맞춰 뽑아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방광이 차서 소변이 역류하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안타까운 모습을 날마다 보기에 밥 먹을 때만이 아니라 화장실에서도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폐암에 걸린 한 환자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게 숨 쉬는 건 줄 알았는데 폐암에 걸리고 보니 이게 가장 힘드네요.”

우리가 호흡할 수 있는 것도 참 감사한 일입니다. 

전신마비 환자들은 저에게 말합니다. . “제가 하반신만 마비 됐더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손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내 손으로 휠체어를 밀고 다니면서 무슨 일이라도 해서 먹고 살 수 있을 텐데….”

전신마비 환자 가운데도 손을 조금은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숟가락이나 포크를 끼운 보조기를 손목에 묶어 밥을 먹는 연습을 합니다.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떠 넣기 위해서 수백 번의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밥을 먹을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나라에서 북쪽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굶어 죽어가는 동포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함께 먹게 해주십시오. 스스로 밥을 떠먹지 못하는 마비 환자들, 팔이 없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함께 먹게 해주십시오. 입맛이 없어서 먹지 못하는 암 환자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입맛이 있게 해주십시오.”

저는 가끔 환자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온전한 다리로 일어서고 걸어 다닐 수 있고, 자신의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고, 배우자가 당신에게 ‘여보’라고 부르고, 자녀들이 당신에게 ‘엄마’ 또는 ‘아빠’라고 불렀을 때,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았나요?”

그러면 다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합니다. 

“그때는 돈이나 집이 없다고, 실직했거나 사업에 실패했다고, 또 아이가 마음에 안든다고..제 말을 안듣고 공부 못한다고.. 대학에 떨어졌다고 불평하기 바빴어요. 내 다리로 걸어 다니고,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것에 감사할 생각도 안하며 메마른 인생을 살았어요.”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졌지만 감사할 줄 모르고 당연한 걸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내게 이미 주신 걸 깨닫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며 내게 없는 걸 세면서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그것들을 잃는 그날이 오면 그제야 얼마나 큰 선물이었는지를 깨닫고, 감사하지 못했음을 후회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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