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사교육이 창의성을 저해한다? 설득력 없어.. 더 큰 문제는

"사교육, 창의성 저해" 설득력 없지만
공교육 무력화·정서발달 부작용 우려

사교육을 시키면 아이들의 창의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국무총리실 산하의 국책연구소인 육아정책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렇다. 사교육을 1주일에 1회 더 받으면 창의성 점수가 0.563점 떨어진다는 것이다. 창의성을 길러주려면 아이들을 사교육 학원에 보내는 대신 독립심을 길러주고, 가정을 화목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다. 사교육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정의의 의지는 이해가 되지만 설득력은 없는 주장이다. 알량한 창의성보다 당장 쓸모가 있는 성적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교육의 폐해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과도한 사교육은 공교육을 통째로 무력화시키고, 사회적 격차도 고착화시킨다. 심지어 사교육 때문에 가정이 해체되는 경우도 있다. 세계 최악의 저출산도 지나친 사교육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교육이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사교육에 내몰린 아이들에게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정상적인 생활은 그림의 떡이다. 제 때 식사를 챙겨 먹을 수도 없고,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도 없다. 정상적인 신체 발달이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비만이나 소아당뇨 등의 만성 생활습관병에 걸리는 아이들이 심각한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다.

정서 발달에도 문제가 생긴다. 끊임없는 경쟁의 압력에 짓눌려버린 아이들이 산만해지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남과 원만하게 어울리기 위해 필요한 사회성도 떨어지고, 인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난다. 돌이키기 어려운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에 걸릴 가능성도 커진다. 물론 창의성도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성적에만 집착하는 학부모들에게 사교육의 위험을 정확하게 알려줘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사교육이 나쁘다고 무작정 우길 수는 없다. 공교육에서 제공하지 않는 특별한 재능이나 소양을 길러주기 위한 정상적인 사교육은 절대 탓할 수 없다. 세계를 놀라게 한 김연아·손연재·박인비가 모두 그런 사교육으로 성장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아이들에게 무작정 암기식 문제풀이와 선행학습을 강요해서 성적이 올라가는 것처럼 만들어주는 엉터리 사교육이다. 공교육을 신뢰하지 못하는 학부모들의 불안을 부추기는 고약한 상술이 동원된다. 그래서 우리말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유아에게 영어 교육을 강요하고, 초등학교 산수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중학교 수학을 억지로 가르친다. 사실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사교육 자체가 아니다. 공교육을 무력화시키는 사교육의 교육 내용과 맹목적 암기식 교육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공연히 학부모의 불안을 부추기는 사교육의 공포 마케팅도 문제다.

어설픈 '과학'을 앞세운다고 학부모의 불안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1주일에 1회의 사교육을 더 시키면 창의성 점수가 떨어진다는 육아정책연구소의 주장은 과학적으로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창의성이 나이에 따라 일정한 비율로 발달한다는 근거는 없다. 조사 대상 어린이의 평균이라는 16.43점 중에서 0.563점은 충분히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다. 어설픈 뇌과학으로 사교육의 부작용을 밝혀내겠다는 언론의 시도도 황당한 것이다. 

사교육 광풍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고등학교를 다양화하고, 대학입시를 뜯어고치는 정도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로 분명하게 확인한 사실이다. 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빼앗고, 대학을 평준화하겠다는 어느 대선 캠프의 정책도 황당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것이다. 공교육을 황폐화시키는 엉터리 수능도 폐지해야 한다. 출신 대학의 이름과 전공만으로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아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인재를 평가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만 가능한 일이다. 학부모가 정말 원하는 것은 자식의 대학입학이 아니라 성공이기 때문이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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