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이야기를 통해 본 협업

유대인 하면 어떤 이야기가 떠 오를까?
요즘 유대인 아카데미에 참석하면서(강사 홍익희 교수:유대인 이야기 저자) 유대인의 대한 삶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협업은 유대인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십지만 유대인들의 삶을 본다면 그들의 삶이 협업의 삶이었음을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나라가 망하고 난 후 정착을 못하고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살아가기위해 몸무림 치게 된다.


유대인들은 가정교육을 통해 글을 사용할 줄 알았기에 어딜 가든지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되었고 이슬람을 믿었던 사람들은 유대인들은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들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글의 힘을 충분히 알 수 있고 확인해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나라가 없는 설움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어딜 가든지 잘못되면 유대인의 잘못처럼 치부되었고 그러다 보니 늘 목숨을 부지하고 가족을 지키려는 삶이 연속이었음을 보게 된다.


이런 고난은 살아가면서 늘 도망갈 준비를 하도록 만들었고 유대인들은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보석 등을 준비하던 모습들이 지금의 보석 관련 세계시장을 좌우하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 겠다.



  



재밌는 것은 유대인이 정착하는 지역마다 경제가 살아나고 나라가 부강해졌지만 유대인이 떠나고 나면 경제는 어려워지는데 유대인이 많이 거주하였던 네덜란드, 독일, 영국, 스페인 등을 살펴보면 그들의 역사가 증명을 해 준다.


영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이런 유대인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유대인을 환영하는 운동을 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유대인의 7가지 규칙이 만들어진다.
첫째. 유대인이 노예로 끌려가면 인근 유대인 사회에서 7년 안에 몸값을 지불하고 찾아와야 한다.
둘째. 기도문과 (토라) 독회를 일률 화해 통일한다.
셋째. 13세를 넘은 남자 성인이 열명 이상 있으면 반드시 종교집회 갓는다.
넷째. 남자 성인 120명이 넘는 커뮤니티는 독자적인 유대인 사회 센터를 만들고 유대 법을 준수해야 한다.
다섯째. 유대인 사회는 독자적인 세금제도를 만들어 거주 국가의 재정적인 부담을 받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비상시에 쓸 예금을 비축해 둔다.
여섯째. 자녀 교육을 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유대인을 방치하는 유대인 사회는 유대 율법에 위반된다. 유대인이면 누구든 유대인 사회의 도움을 청하고 받을 권리가 있다.
일곱째. 유대인 사회는 독자적인 유대인 자녀들의 교육기관을 만들어 유지하고 경영할 의무가 있다. 가난한 유대인 가정의 아이들을 무료로 교육시키고, 인재양성을 위한 장학제도를 운영한다.


[출처] 유대인 이야기 홍익희 지음 | 행성B잎새

7가지 규칙을 보면 협업이 얼마큼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협업의 출발은 가정에서부터 출발이다
유대인들은 협업의 중요성을 알았기에 이런 규칙이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협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가족이 함께할 때
협업은 내 옆에 있는 분들과 함께 할 때
협업은 누군가 잘 되었으면 할 때
협업은 섬기는 마음을 가지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다.



협업 아카데미를 하면서 한번도 글을 써 본적 없던 내가 구플,페이스북,블러그,티스토리~ 까지~~ 

부부 건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올리게 된다.

우리 부부를 염요일 선교사님께서 홈페이지 작업부터 글 작성하는 것 까지 하나하나 차근차근~ 가르쳐 주신다.
가르쳐 주신대로 하나하나 차근차근 ㅋ 하다 보니 어느새 내가 글을 쓰게 된다.


건축일에 자부심 있었던 신랑은 건축을 하면서 돈을 떼이기도 많이 떼였다.

건축일이 본인에게 천직이려니 하고 그래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일을 해왔다.  

그런데  또 다시 집을 지어 주고 돈을 받지 못하자.. 그로 인해 스트레스로 (피부 알르레기) 병까지 얻자 사람을 더 이상 믿지 못 하겠다고 한다. 

건축 일이 들어와도 그는 일을 하지않았다.




미니 포크레인 일을 하겠다고 한다.

일단은 몸도 편하고 스트레스를 적게 받을 거 같단다.
그렇게 시작 하기를 처음부터 일이 들어 올거라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란게 기대치가 있어 그런지 ㅋ 
미니 포크레인 볼때마다 제는 언제나 나가서 일하나 하며 혼자서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래도 우린 실망치 않고 SNS에 글을 올리는 작업을 했고 얼마 후 건축과 미니 포크레인 상담 전화가 여기 저기 각 지방에서 문의가 온다.
그래서 그런지 미니 포크레인 찾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간다. 
너무나 감사하다.



비록 얼굴을 뵐수는 없지만... SNS에서 협업 아카데미 식구들이 응원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덕분인 것 같다.
당장 일이 들어오지 않더라도 우리 부부는 믿음이 있었고.. 그리고 응원의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 부부에게는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협업 아카데미를 통해 알게된 대표님들 서로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아는듯... 점점 하나가 되는 이 기쁨 행복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부부 건축 & 미니 포크레인(미니중기)


언제든지 불러만 주세요.


010-8512-7153




협업 아카데미 27기가 구로에서 시작이 되었다.


계획도, 시스템도, 어떤 틀도 만들어 놓지 않고 시작한 아카데미

한분 한 분에게 섬기는 마음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맘으로 시작되었는데 벌서 27기이다.


최근 몇몇 친구들과 만나 소셜마케팅 협업 아카데미의 관한 대화를 나누었을 때  한 친구는 소셜마케팅 교육을 여번 들었고

교육을 받았지만 실제 원했고 기대했던 도움은 되지 않았다고~


그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소셜마케팅 협업 아카데미는 교육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협업을 하고자 교육하는 것이며, 교육이 끝나면 교육받은 것을 가지고 협업을 시작하게 된다고 설명을 하여 주었다.


또한 타 교육을 받은 분들은 유상 교육이든 무상 교육이든 수업이 끝나면 혼자 해 나가야 하지만 우리 일인 미디어포럼 소셜마케팅 협업 아카데미에서는 코칭을 통해 멘토들을 통해 계속적인 지원과 도움을 주고 있다고 ~~


친구들의 반응은 매우 홍미 있어 했는데 일인 미디어 포럼에서 진행하는 소셜마케팅 협업 아카데미 교육을 같이 듣어보자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다 일인 미디어포럼 소셜마케팅 협업 아카데미는 교육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협업이 목적이기에 더 귀하게 생각이 들고 또한 멘토나 코칭으로 참여하는 모든 분들이 섬기고 나누는 즐거움 속에 함께하니 이보다 귀한 만남이 어디 있으랴


지나온 협업 아카데미와 협업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협업 아카데미와 협업

앞으로 진행될 협업 아카데미와 협업을 기대하여 본다.

평창안수예오가피 대표인 안정숙 대표님을 소개합니다.



일인미디어포럼 소셜마케팅 협업아카데미 원주센터에는 
평창안수예오가피 대표인 안정숙 대표님이 있습니다.


제 고향이기도 한 평창은 늘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늘 그립곤 하는데 전국에 협업 아카데미관련으로 지역 센터를 방문하곤 하지요


그런데 놀랐게도 고향분들을 만나게 되는 일이 있는데 평창안수예오가피 안정숙대표님과 평창김치 김교근 팀장님이었습니다.

안정숙대표님은 원주센터에서 만났고 평창김치 김교근대표님은 제수센터에서 만났습니다.



인터넷을 보다보니여성농업인 신문에서 "화제의 여성농업인" 소개한 글을 보게 되어서 여기에 소개를 하여봅니다.

여성농업인신문 (2014년 01월 17일 (금) 14:27:21)
화제의 여성농업인-평창오가피랜드 안정숙 대표
“산속 자연농법으로 키운 ‘야생 오가피’ 드세요”

“산속 야생 그대로 자란 토종 오가피로 원기회복하세요”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평창오가피랜드> 안정숙 대표는 좋은 식품은 좋은 원재료에 있다는 일념으로 17년째 최고의 오가피를 생산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안 대표와 오가피의 첫 만남은 우연한 기회로 시작됐다.

“어렸을 적 고향 정선을 떠나 학업을 위해 서울로 유학을 갔어요. 자연과 함께 뛰놀다가 건물로 꽉 막힌 서울에 있으니 너무 답답했죠. 항상 시골에 대해 동경했어요. 돈을 벌면 시골로 돌아가리라는 꿈을 꿨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횡성에 작은 땅을 구매했고, 무엇을 심을까 고민하던 중 우연치 않게 오가피를 보고 첫눈에 반해 농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안 대표는 농사(農事)에 농(農)자로 모를 정도로 단 한 번도 농사를 지어본적 없지만 “마음 가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생각으로 오가피농사에 도전했다.
재배방법이 다른 작목에 비해 간편한 오가피는 그녀가 농사짓기에 적합했다. 또 심은 첫해부터 오가피 생산이 잘되고, 오가피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판로도 어렵지 않았다.

“처음엔 1천여평으로 시작했는데 오가피 생산도 잘되고 돈벌이도 되니깐 본격적으로 오가피를 생산하기 위해 평창에 4만평의 땅을 사 오가피농장을 시작했어요. 계획적으로 농사를 지은 것이 아닌 한순간 욕심 때문이었죠. 그런데 오가피의 인기가 2년을 넘지 못하더라구요.”
이후 오가피는 하향세를 타며 안 대표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규모는 늘어났는데 판로가 없어 어려움이 왔던 것이다.

“오가피를 포기할까도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포기하려고 해도 저에게 남는 것은 오가피뿐이더라구요.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오가피 규모를 대폭 줄이기로 마음먹었어요. 또 남들과 차별화를 이루기 위해 산에서 오가피를 생산하기로 했습니다.”

안 대표는 밭에 있는 오가피를 해발 700m 산에 모두 옮겨 심었다. 검은 퇴적분이 충분히 쌓인 산에 심은 오가피는 따로 퇴비를 주지 않아도 영양분이 충분했다. 2004년부터 산속에서 야생 그대로 자란 오가피는 현재까지도 무농약재배로 재배되고 있다. 10년째 야생에서 자란 오가피는 토종오가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 대표는 최고의 오가피를 만들어 소비자들이 섭취하기 쉽게 엑기스, 발효원액, 농축액 등을 가공해 판매하고 있다. 또한 도시소비자들과 가까이 하기 위해 경기도 안산에 소비자상담실 및 직거래매장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이러한 정성이 소비자들의 마음에 닳았을까. 17년째 소비자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으며 이젠 ‘안정숙의 평창오가피’가 브랜드가 됐을 정도다. 이러한 명성은 이웃나라 중국에도 소문이 퍼져 중국현지 신문에 평창오가피랜드가 소개되기도 했다.



“중국 언론에 소개되고 난 뒤 수출 상담이 꾀 이뤄지고 있어요. 주문도 꾀 들어오구요. 중국에서도 오가피를 재배하지만 사계절이 뚜렷하고 토질이 좋은 우리나라 오가피의 품질이 훨씬 좋다고 하더라구요. 원료가 확실하면 무조건 되요. 좋은 것은 소비자들이 먼저 알고 찾아오거든요.”

안 대표는 앞으로도 오가피에 대한 열정을 다 쏟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가피 열매를 이용한 음료개발, 환, 오가피족발, 찐빵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 출시할 예정이에요. 앞으로도 소비자들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도록 최고의 오가피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김수현 기자.



일인미디어들의 협업마케팅 효과.





글 쓰기 시작하신 최재천 회장님의 협업 행보가 놀랍습니다. 인천에서 4기 아카데미가 있을 때 오셔서 그닥 긍정적 시각은 아니셨는데요.ㅎ 5기때 명동에서 박현순 대표님이 열공, 7기를 구로에서 열었습니다. 그러면서 글 쓰기 시작하신 최회장님의 매일 새벽 한편씩의 진솔한 글이 반향을 일으키네요.


오늘 새벽 문득 부산 덕천동의 길목삼계탕이 유산균쌀과 접목되어 미국에서부터 실력으로 인정받으셨던 길목 윤쉐프님과의 협업을 상상해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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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돋친 유산균 발효 곡식
출처 : "세타월드" | 블로그
http://naver.me/xVXIzz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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